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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포카라 2022. 1. 1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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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원죄와 불교의 윤회전생은 닮은 구석이 있다.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서 저지른 죄 때문에 낙원에서 추방되는 벌을 받고 이제 원죄가 되어 그 뒤에 자손들이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아담과 이브의 섹스가 죄가 된다는 것…자연상태에서 남녀간의 섹스가 죄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라서 그런 성경 내용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뿐더러, 수천년 전에 바빌로니아 지방에서 어떤 남녀가 한번 저지른 연애 때문에 그 죄값을 대한민국 땅에 살고 있는 내가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니체가 그랬다. 기독교는 인간에게 노예로서의 죄의식을 심어주는 종교라고. 스스로 노예가 아닌 위버멘쉬(超人)이 되어 자기 주체적 삶을 지향하라고 니체는 말한다.

 

불교는 윤회전생을 말한다. 세상의 삼라만상은 윤회의 그물망을 벗어나지 못한다. 윤회의 틀 속에서 몸을 바꾸는 전생(轉生)의 길을 가야 하는 운명을 말한다. 사람이 지렁이가 되고 지렁이가 죽은 뒤에 개미가 되었다가 다시 사람으로 환생하는 끝없는 돌아옴과 몸바꿈. 佛家에서 윤회는 고통이자 해탈을 통해 윤회전생의 쳇바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끝없는 윤회의 굴레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前生에서 삶에 대한 죄과, 즉 카르마(嶪) 때문이다. 지금 현재 내가 고통 받는 것은 이 세상에 오기 전 세상에서 내가 지은 죄 때문인 것이다. 불교도 기독교처럼 죄의식을 심어주기는 마찬가지다. 나의 전생의 카르마를 지금의 내가 짊어져야 한다는 것. 그게 어디 내 책임이냐고 부정해도 할 수 없다는 거다. 그렇다고 증명할 수도 없는 것이 종교의 교리인만큼 그냥,무조건, 아무 생각없이, ‘믿슙니다’,,,,하고 손을 모아 조아리는 수밖에 없는 걸까? 

 


 
김기덕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 봄>은 절집의 동승의 업장에서부터 시작된다. <봄>이 오고 꽃 피는 계곡에서 티없이 맑은 동승은 물고기 몸통에 돌을 메달아 놓는다. 그리고 깔깔거린다. 뱀과 개구리의 몸통에도 돌을 달아 놓는다. 살아 있는 것을 죽이는 행위,,그것이 죄라는 인식이 부재하더라도 동승의 행위는 ‘죄악과 쾌락’이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을 ‘아 프라이오리’(先驗的) 하게 알아차렸는지도 모른다.  돌을 메달고 힘겹게 자멕질 하는 물고기의 모습은 죽음을 상징한다. 죽음을 통해 쾌락을 느끼는 아이. 조르쥬 바타이유가 말하는 에로티즘의 핵심은 에로티즘과 죽음이다. 쾌락의 정점에 죽음이 있다. 죽음이야 말로 가장 에로틱한 것이다. 섹스를 통한 오르가즘은 작은 죽음의 경험이다. 바타이유에 따르면 죽을 때 가장 진한 에로티즘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의 책에는 섹스의 절정에 목을 조르는 행위 등이 묘사되어 있다. 금기의 위반 역시 쾌락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금기가 강할수록 쾌락의 지수도 높아진다. 불륜의 쾌감이 정상적인 부부생활의 만족을 넘어서듯이.


 
노승은 동승의 행위를 보면서 그가 평생 짊어져야 할 카르마로 생각하고 그 아이의 삶이 평탄치 않을 것임을 근심한다. 섬 같은 절집으로 젊은 여자애가 찾아오고 동승은 이미 장성해서 자연스럽게 섹스의 쾌락에 몸은 떤다. 노승은 그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듯이 바라만 본다, 그게 <여름>이다.


 
<가을>은 혼돈과 방황을 상징한다. 노사는 여자를 찾아 절을 떠나는 청년승을 잡지 않는다. 노승은 그가 속세에 나가 치정살인의 죄업을 저지르는 것을 확인한다.


 
죄는 반드시 벌을 동행한다. 죄라는 因이 있으면 반드시 벌이라는 果가 따른다는 것이 불교의 핵심교리다. 이승에서 죄닦음을 못하면 후생에서라도 반드시 죄의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는 것이 불가의 도덕률이다. <겨울>은 고통과 좌절의 계절이면서 앞으로 올 봄에 대한 희망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청년은 반야심경으로 마음을 가라앉힌 후에 형무소에 들어간다. 그 사이, 노승은 홀로 다비를 하고, 출옥한 후에 절로 돌아 온 청년은 노승의 사리를 거둔다. 그리고 다시 여자가 찾아온다. 강보에 쌓인 아이를 버리고 까만 밤에 절집을 나서다가 물에 빠져 죽는다. 모두가  자신이 지은 죄의 업장과 그 결과이다.


 

 

영화는 피할 수 없는 숙명 때문에 몸부림치는 인간의 비극성에 카메라를 들이덴다. 죄악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슬픈 운명에 대해 그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을 영화는 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종내에는 인간은 아픈 경험을 통해 자신을 고양시키고자 함으로써 숙명을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를 지니게 된다. 불경을 외면서 자신의 죄과를 씻고자 하는 남자는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얻는다.

 
김기덕의 <섬>은 섬뜩함과 핏빛 에로티시즘의 조화가 유별났다. 그는 상처를 후벼 파서 뼈속을 긁어내는 작가다. 찢어지는 듯한 여자의 비명과 원시적인 섹스, 무표정한 얼굴이 그를 다른 감독과 구별한다. 오랜만에 만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수작. 청송 주산지라는 연못에 세트했던 절을 중심으로 한 사계절의 아름다움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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