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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황산벌 -- 거시기 해버리는 영화

포카라 2022. 1. 1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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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으로 황산벌을 봤을 때, 재미있겠다 싶은 영화였다. 이 영화는 사투리의 난장(亂場)이다. 사투리를 쓸줄 알고, 그 맛을 아는 사람만이 웃을 수 있는 영화다. 갱상도 문디자슥과 전라도 거시기에 대한 입말의 원초적 맛을 아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이기 때문에, 이 영화는 무작정 상경이 시작되는 개발의 연대인 1960년대에 시골에서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타겟으로 설정될 수 밖에 없다.

"머시기가 거시기 하당께" 라는 말의 뜻을 당신은 아는가? 나는 배꼽이 떨어져 날라 다니는 줄 알았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신라와 백제 양군 진영의 "신경전" 이다. 먼저 신라에서 선발된 정예의 말빨들이 온다. 백제 진영 앞에서 엉덩이를 까뒤집고 쑥떡을 멕이고 지랄을 한다. 이들은 보성 별교에서 차출된 세 명의 욕쟁이들에게 녹아웃이 되고 만다. 바로 이 장면, 말장난으로 웃기려고 하는 감독의 작전이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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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이 황산벌 출정을 앞두고 부인과 세 자식을 죽이는 장면도 인간이 언어에 포위된 동물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계백은 사약을 내놓고 말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죽음을 택하라는 계백의 말에 그의 부인은 흥,,하고 콧방귀를 뀐다. "웃기지 마라.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고, 인간은 이름을 쫓다가 망한다" 위정자들이 자신들을 위해 터무니없는 희생을 강요하는, 봉건적 이데올로기는 여지없이 박살난다.

 

"계백이 당신이 그 잘난 나라를 위해 전쟁터를 전전할 때, 나라가 나와 새끼들에게 해준게 뭐냐?"  

 

660년 전의 정치현실과 1400년이 지난 지금의 정치는 단 한치의 오차도 없이 되풀이 된다. 두겹의 코미디가 영화의 축이 됨은 여러곳에서 감지된다. 당나라 군대가 안하무인 격으로 신라를 잡들이 하는 대목은 "당나라 = 미국", "신라 = 대한민국" 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다. 기울어가는 나라 앞에서 뇌물 운운하는 의자왕의 아들들은 집권당에서 권력을 쥐면 언제나 부패하고마는 정치인들에 대한 야유다. 신라가 백제를 쪽수로 눌러버리자는 부분은 영남 패권주의에서 한치도 나아가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 그대로다. 비교적 정확히 고증된 삼국시대의 정치적 지형의 사이사이를 질퍽한 사투리로 마름질한다.

 

이 영화는 코미디로만 보기엔 "거시기" 하다. 자신들의 사리(私利)를 위해 백성들을 전쟁터에 내모는 정치가들, 전쟁에서 승리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삼는 신라의 군사들. 이들의 행위를 보여주면서 전쟁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지게 만든다. 미 제국주의가 벌이고 있는 명분없는 전쟁의 참혹함을 보라. 전쟁은 시대를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그것이 '전쟁'인 한 무의미하고 더럽고 추악하며 옳지 않다. 이렇게 보면 영화가 갑자기 무거워진다. 바로 그 순간, 계백의 입에서 거시기가 나오고, 그 '거시기' 라는 말의 암호를 풀기 위해 열시미 '머시기' 하는 신라 암호해독 임무를 맡은 병사의 고뇌가 겹쳐지면 장면이 나오게 된다. 관객의 입술이 귀 밑에 걸리지 않을 수 없다.

계백도 알았으리라. 명분 없고 승산없는 전쟁에 자신과 민초들이 희생된 것이라는 것을. 그는 '거시기'를 살려 내보낸다. 거시기가 논에서 김을 메는 거시기 엄마의 품에 돌아가는 장면을 엔딩으로 내보내는 것은 평화에 대한 소박한 갈망의 표현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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