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기

<영화> 그녀에게... 쿠쿠루 쿠쿠 팔로마

포카라 2022. 1. 19. 22:51
728x90

 

 

 

간밤내 비가 왔나 보다. 아침의 얼굴은 맑다. 집 앞에 키 큰 메타세콰이어가 노란 잎사귀들을 흩뿌려놔서 을씨년스러운 풍경이지만 나무들은 자신들의 몸의 일부를 버려야 할 때를 아는지 아무련 미련도 없는 듯하다. 여느 해 겨울 이맘때였을까? 혼자서 부석사를 찾은 적이 있다. 조사당 뒷편으로 가는 길에 산죽들이 바람결에 오소소하게 떨고 있었다. 작은 절집 앞마당에 아름드리 나무가 잎새 하나 없이 서 있었다. 그 나무는 멀리 보이는 소백산맥을 대면하고 시간의 흐름을 무념의 경지에서 침묵하는 듯했다. 아, 나무가지들이 그려놓은 기하학적 추상 같은 그림들. 아름다웠다. 어떤 그림보다도. 그 나뭇가지 위로 펄펄 눈이 나릴 것이다. 찬바람이 불고 새들도 오지 않는 고독의 밤이 찾아와서 몸서리날지라도 나무는 묵묵히 거기 그렇게 서 있을 것이다. 나무는 알고 있을까. 그 고독과 불면의 밤이 지나고 나면 남녘에서 따사로운 바람이 불어와 꽃을 피우고 땅속 깊은 곳에서 수액을 빨아들여 연초록 새순을 돋게 한다는 것을...

 

전철을 타는 입구 경로당에 할머니가 신문을 내놓고 있다. 가끔은 옆에서 좌판을 벌리고 계시는 중년 아줌마와 이야기할 때도 있다. 그 분에게도 화양연화와 같은 활짝 꽃 피던 봄날이 있었겠지. 사랑했던 자식들도, 마음 졸이던 사랑도, 푸른 하늘을 보면 아무 이유없이 가슴 뛰던 날들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 모든 것을 시간이 빼앗아 가버렸겠지. 이른 아침에 일어나 몇 백원 하는 신문을 팔고 하루 하루의 일상을 견디는 그 할머니의 삶. 그리고 나무의 삶.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식물인간이 되면서부터 사랑을 느끼는 남자의 이야기다. 언제 정신이 들지도 모르는 여자에게 말을 건네고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는 그 남자의 아이를 갖는다. 외로운 하얀 비둘기가 그녀의 창가에 와서 노래를 부를 때, 그게 그 남자인줄 알아라고, 그렇게 사랑을 간직하고 죽어가는 남자의 안타까운 사랑. 여자는 그 사랑을 느꼈을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고 혼자서 사랑의 감정을 간직하고 죽어가는 남자는 행복했을까? 어긋나버린 사랑이지만 그 사랑은 이미 이루어진 것을. 사랑은 그 시작을 모르고, 지나가버리면 끝도 없는 바람같은 것이 아닐까. 그 순간들, 바람이 불어오면 감미로운 살랑거림의 무늬를 느낄 수 있지만 잡을 수 없는 것. 끝내는 마음의 파문을 일으키고야 마는 것. 바람이 머무는 순간은 사랑의 시간. 인간은 순간의 존재다. 그 순간에 충실하고, 그리고 얼마 있다가 태허속으로 사라지는 존재. 영원한 사랑. 그것은 그 순간에 서 있는 인간의 존재를 말한다.


사랑의 순간은 영원하다. 영원은 순간인 것을. 길 위를 걸어가는 사람. 이 영화는 과정을 살 수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이 지상에 와서 사랑을 위해 자신을 던진 남자의 순백같은 사랑이야기다. 브라질을 대표하는 뮤지션 카에타노 벨로소가 들려주는 'Cucurrucucu Paloma(쿠쿠루쿠쿠 팔로마)' 의 음악이 내 가슴에 잔물결을 만들고 지나간다.

 

 

<그녀에게>  주제가   "쿠쿠루쿠쿠 팔로마"..가사

 

그는 수많은 긴긴 밤을 술로 지새웠다 하네
밤마다 잠 못 이루고 눈물만 흘렸다고 하네
그의 눈물에 담아낸 아픔은 하늘을 울렸고
마지막 숨을 쉬면서도 그는 그녀만을 불렀네
노래도 불러보았고 웃음도 지어봤지만
뜨거운 그의 열정은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네

어느날 슬픈 표정의 비둘기 한마리 날아와
쓸쓸한 그의 빈집을 찾아와 노래했다네
그 비둘기는 바로 그의 애달픈 영혼
비련의 여인을 기다린 그 아픈 영혼이라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