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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체리 향기 -- 키아로스타미의 존재의 이유

포카라 2022. 1. 19.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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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꿈꾸는 남자. 이란의 헐벗은 사막을 가로지르는 낡은 자동차. 자살한 뒤에 자신의 시체를 처리해 줄 사람을 찾아 가는 기이한 여행. 남자가 처음 만나는 사람은 군인이다. 군인은 남자의 말을 듣지도 않고 무조건 자살은 안 된다며 남자의 제의를 거부한다. 두 번째 남자는 신학을 공부하며 성직자를 꿈꾸는 젊은이. 그는 남자의 자살은 신에 대한 죄악이라며 자살을 한사코 만류한다. 어떠한 이유로도 자살은 정당화 될 수 없는 거라며 남자와 대화를 거부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자기만 어려움에 처해 있고, 고독하며, 외롭다고 느끼며, 타인의 고통엔 아랑곳 하지 않는다. 소통이 부재 하는 곳...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인간들….



세 번째로 만나는 사람은 자연사 박물관에서 일하는 늙은이. 영혼이 빠져 나간 육신을 거두어 달라는 남자의 제의를 노인은 덤덤히 듣는다.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어쩌면 그것은 대화의 시작이자 끝이기도 하다. 자신의 문제의 해답은 이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지 않은가. 노인은 자살하겠다는, 절망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를 사려 깊고 진지하게 듣는다. 그리고 노인은 나직한 목소리로 먼 과거가 되어 버린 자신의 젊은 날 이야기를 꺼낸다.

 

 

 


젊은이 난 이 곳 사막에서 평생을 살아 왔다네.
나도 젊은이 같은 회색 빛 청춘의 시절에 자살을 꿈꾸었지.
어느 여름날 새벽, 난 죽기 위해 아내가 자고 있는 집을 나섰지.
어두컴컴한 새벽녘에 목을 매기 위해 체리나무 위에 올라 갔어.
동녘 하늘가에서 먼동이 터오는 때였구만.


밧줄에 목을 메고 육신을 나무 아래로 던질 찰라였을거야.
마을 동구 쪽에서 조무래기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내가 목 메려고 하는
체리나무 쪽을 향해 걸어 오는거야. 
아이들은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나를 보고 나무를 흔들라고 손짓했어.
나는 체리 나무를 흔들었지.
그러자 이제 갓 익기 시작하는 체리열매가 우수수 떨어졌어.
아이들은 체리열매를 주어 먹으면서 즐거워 했어.


그 아이들이 학교로 간 뒤에 나는 나무에서 내려왔어.
그리고 체리 열매를 몇 개 주어서 집으로 왔다네.
그제서야 아침 잠에서 부시시 일어난 아내에게 체리 열매를 줬지.
영문도 모르는 아내는 체리열매를 맛있게 먹더군.

 


나는 그 때 깨달았다네.
이렇게 하찮은 체리 열매조차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는 것을...
내가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간단했지.

젊은이, 난 자네 고민이 뭔지 알지 못하지만 세상에 죽을 이유는 없는 법이라네.
여자 문제 때문인가? 아니면 돈 때문인가?
인간은 누구나 죽고 싶을 만큼 고민을 갖고 살고 있다네.
허나 그러한 번민 이상으로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도 있는 법이라고 나는 믿네.

 

당신은 보고 싶지 않은가?
아침마다 황홀하게 떠오르는 햇살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옹달샘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샘물이 돌돌 거리는 소리를,,,
철따라 지천으로 아우성치듯 피어나는 꽃들의 모습과,
매일 마다 서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저녘 노을을 보고 싶지 않은가?

나는 큰 병에 걸린 손주 녀석을 데리고 살고 있다네.
그 녀석 큰 수술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 힘든 상황이지.
자네가 나한테 그런 큰 돈을 준다면 난 아이 수술을 할 수 있을 거라네.

하지만 나는 그런 돈 갖지 않아도 상관 없으니 죽지나 말게"  


그러나 자살을 꿈꾸는 남자는 노인의 간곡한 만류를 듣지 않는다. 자신의 죽음의 시간과 장소를 말하며 노인과 헤어진다.

 

 

 



남자는 죽기 위해 산으로 올라간다. 밤새도록 산 위에 앉아서 죽음을 생각하는 남자. 먼 발치에 아스라히 보이는 산 아랫녘 옹기종기 마을은 밤의 장막 속에서 은빛 금빛으로 점점이 빛난다. 어느덧 먼동이 터 오고 먼 발치에 서 있는 체리나무는 하얀색 꽃들로 뒤덮여 있다. 군인들이 대오를 지어 아침 운동을 하러 오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젊은이는 산 아래로 천천히 차를 몰고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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