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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토리노의 말 -- 영원회귀의 철학

포카라 2022. 1. 17.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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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정신병이 발작하기 직전 이딸리아 토리노에 간다. 거기 광장에서 니체는 말을 때리는 마부를 본다. 말이 움직이려 하지 않자 마부는 회초리로 사정없이 말을 때린다. 이를 본 니체가 한걸음에 달려가 말의 목을 그러안고 마부에게 때리지 말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그 뒤로 니체는 죽을 때까지 10년을 식물인간과 비슷한 상태로 지내다 죽는다. 이게 바로 '토리노의 말' 이다.

 

영화는 매우 단조롭다. 흑백영화여서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주요 등장인물이 둘, 말 한필. 바람이 함석지붕을 떠메갈듯 불어대는 황야에 오두막 집이 세트의 전부다. 마부와 그의 딸이 하는 일이란 일어나면 옷을 입고, 물을 긷고 감자를 한 알씩 먹고,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손보고 저녁이 오면 다시 옷을 벗는 행위만 반복한다. 그게 한 시간 정도 지속된다고  생각하라. 당신의 뇌에서 아드레날린 분비물이 쌓이고 뭐 이 따위 영화가 있어라며 쌍시옷이 일곱 방 나오기 직전에 이르게 될 터이다. 이런 영화 좋다고 쫓아 다니는 사람들 혹시 정신병자 아닐가 하는 생각도 들겠지?  하여튼 별종이 많다니깐, 이라고 생각이 들 다가 문득  왜 감독은 이런 난해한 영화를 만들었는지에 대해 약간의 탐구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면 바로 그 시점이 당신의 영화 수준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순간이 아닐까?

 

토리노에서 니체가 만났던 마부는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이 영화는 니체의 철학을 영화화 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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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니체의 '영원회귀'를 생각하면 머리에 쥐가 난다. 강신주 선생은 영원회귀를 자유와 연관해서 설명하셨다. 자유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는 것이라고 정의하셨다. 무엇무엇으로 부터 자유는 소극적 자유다. 그런 자유말고 진정한 자유는 내가 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 그 자체라는 거다. 그래서 자유의식과 한계의식은 같은 말이다. 당신을 옥죄고 있는 한계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유를 꿈꾸는 것이다. 당신은 자유로운가?  당신이 일상적인 챗바퀴 같은 삶을 산다면, 당신의 한계를 알기 위한 도전정신이 없다면 당신은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다. 당신이 돈이 많고 명예가 있는 것과 자유는 무관하다. 당신은 끝없이 도전하는 자여야 한다. 자유를 통해 희열을 느껴라!

 

영원회귀는 영원히 똑  같은 오늘이 반복된다는 사상이다. 니체는 불교나 기독교 등 내생을 말하는 종교를 강력히 비판했다. 이들은 죽음을 미끼로 장사하는 자들이다. 당신 앞에 죽음은 피할 수 없다. 그러니 지금 죽음을 준비하라!  그렇다면 인간은 현재의 삶을 사는 것인가? 아니면 죽음을 사는 것인가? 나 같은 무신론자는 죽음 이후에 오는 삶에 관심없다. 지금 당장 여기 이 순간이 중요하다. 죽어서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내세가 중요한가? 아니면 지금 현재 삶이 중요한가?  왜 있지도 않는, 혹은 있을지 없을지 증명도 안된 사후 세계에 주눅들어 현재를 부정하고, 현재를 비참한 삶으로 생각하면서 내세의 행복을 꿈꾼단 말인가?  다시 니체의 영원회귀로 돌아가 보자.

 

영겁회귀(永劫回歸)라고도 하는데 니체에 의하면, 생(生)은 원의 형상을 띠면서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고, 피안의 생활에 이르는 것도, 환생(還生)하여 다음 세상에서 새로운 생활로 들어가는 것도 모두 부정하고, 항상 동일한 것이 되풀이된다는 사상이다. 여기에서 니체는 현실의 삶의 고뇌와 기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순간만을 충실하게 생활하는 데에 생의 자유와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기독교의 종말론적 사고는 직선적 시간을 말한다. 이내 종말이 오고 구원을 얻는 자는 천국에 간다. 그러나 니체는 자신의 삶이 똑 같이 무한히 되풀이 되더라도 그것을 운명애 (아모르 파티)로서  스스로 선택한 것으로 받아들이라고 한다. 지금 당신은 당신의 삶이 다시 되풀이 되더라도 좋을만큼 당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가?  아니면 지겨워서 절대로 지금 삶과 다른 삶을 살겠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현재 삶은 틀려쳐먹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삶이 영원히 되풀이 되더라도 이를 긍정할만큼 살아내야 한다!   가끔 부부관계를 묻는다. 당신은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배우자와 결혼하겠습니까?  이 때 대부분 절대 그렇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는 부부는 영원회귀의 삶에서 실패한 자다. 어느 순간 다시 지금과 같은 삶이 되풀이 되더라도 나는 당당히 다시 한번!  더 똑 같은 삶을 살겠다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다.

 

"오늘 행복하지 못하면 영원히 행복하지 못한다"  

 

영원회귀는 영원한 행복에 관한 말과 동의어다. <토리노의 말>은 영원회귀와 자유에 대한 반역 같은 영화다. 두 부녀는 일상의 지겨운 반복을 할 뿐이다. 이들에게 자유에 대한 도전은 없다. 죽음이 있을 뿐이다. 영화 중간에 나오는 집시가 영원회귀 사상을 전파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도전하고 즐겁다. 이들은 길을 떠난다. 반면 오두막의 두 모녀는 새로운 삶에 도전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당신이 매일 똑 같은 생각을 하고 똑 같은 일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죽은 자이다. 당신은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다. 당신의 삶이 매일 매일 즐거워야 한다. 그러나 일상적 반복은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그것은 죽음에 가깝다. 이 영화는 기독교 신학의 종말론에 파탄을 의미한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을 만큼 현재를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  죽음을 준비하는데 힘과 시간을 쏟지 말고 지금 현재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라! 신은 살해되었다!  죽음과 결별하라!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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