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기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포카라 2022. 1. 12. 17:58
728x90

 

오늘은 제가 있는 바닷마을에 시원한 바람이 볼어 옵니다.
오랫만에 더위가 많이 누그러졌습니다.
바람이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집 뒷쪽으로 몰려가 동산 위에 아카시아 나무잎새를 뒤집습니다. 불현듯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작품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가 생각났습니다. 오래 전에 본 영화이지만 언제까지나 제 가슴 속에 남아 있을 영화입니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복선이 깔리지도 않고 인물들의 성격도 그대로 드러나는 편이어서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는 밋밋하고 때론 지루해서 짜증나기조차 한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 의 경우 인간의 인내심을 시험하기 위해 만든 영화인가 싶을 정도로 사람을 열받게(?) 한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 할 즈음에 영화는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엔딩 자막을 올린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에서 키아로스타미는 그의 영화중 가장 탐욕스럽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애무한 화면을 내 놓고 있다. 그에게 삶은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해야 하며, 자연은 그러한 삶의 예찬을 증거한다. 밀밭사잇길로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며 시골의사와 청년이 주고 받는 대사는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인간이 용기를 잃지 말고 삶을 가꿔 나가라는 작가의 직언에 다름 아니다.

 

 

 

마을 공동묘지에서 주어 온 사람의 뼈를 강물 속에 던져 넣자 오래 전 아름다운 시절을 간직했던 그 뼈의 주인공은 강물을 타고 흘러 내려간다. 노랗게 익은 밀밭은 어디서 불어오는지 모를 바람에 몸을 맡기고 흔들거린다. 언젠가는 그 바람이 우리를 데려갈 것이다. 그 때까지는 비록 삶이 사소한 일상의 연속일지라도 항상 기도하며 웃는 삶을 살라고 바람은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쿠르드 마을의 한 노파가 병에 걸려 곧 죽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방송기자 일행이 찾아온다. 그들은 보물을 찾으러 왔다고 소문을 내지만 실제 목적은 장례 때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여인들이 얼굴에 상처를 내는 기묘한 장례의식을 취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파는 죽지 않고 오히려 제정신이 든다. 갑자기 황당해진 기자 일행은 하루 하루 돌아버릴 지경이 되고, 노파가 죽을 때까지 마냥 기다리기도 뭣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청년은 마을의 소년과 소 젖을 짜는 처녀, 노인들을 만나서 그들의 자연에 순응하는 순수한 삶에 동화되어간다. 청년이 마을을 떠나려고 할 즈음 노파는 숨을 거둔다. 바람이 노파를 데려간 것이다. 청년은 노파를 찍어야 할 사진기로 장례의식을 치르러 가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만 찍고 마을을 떠난다. 그 청년은 바람이 전해준 말을 들은 걸까? 무슨 비밀의 말을 바람은 전한 걸까?

 

 

 

“나의 조그만 밤에, 아
바람은 나뭇잎들과 밀회를 즐기네.
나의 조그만 밤에 파멸의 고뇌가 있어
들어보세요
어둠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들리나요
난 이방인처럼 이 열락(悅樂)을 바라보며
절망에 빠져든다

..............

오 오, 머리부터 발끝까지 푸르러라
당신의 손을 내 사랑에 빠진 손 위에
타오르는 기억처럼 올려놓아요
당신의 입술을 내 사랑에 빠진 입술의
애무에 맡겨두어요
존재를 다사롭게 느끼듯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의 솔직한 사랑의 감정이 녹아있는 이 시는 청춘의 고뇌와 삶에 순응하는 자세가 엉켜있다. 그녀는 <사랑의 포로> <또다른 탄생> 등 시집을 내며 활동했으나 서른 둘의 아까운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바람이 우리를...> 에는 12세기 위대한 이슬람시인 오마르 카이얌의 시귀가 들어 있다고 한다.

 

키아로스타미는 영화에 문외한인 내게 영화를 기다리는 즐거움을 가르켜 주었다. 우리 나라에서 상영되었던 그의 영화는 대부분 본 것 같다. 그 중에 제일 좋았던 것은 <체리 향기> 앞으로도 이 만큼 아름다운 영화를 만날 수 있을까? <내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는 모두 동숭동 백두대간 소극장에 혼자 앉아서 본 영화들이다. 스틸사진이 있으면 표구라도 해놓고 싶을 만큼 영화의 모든 장면은 아름답고 편한 풍경들로 가득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