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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상 -- 관상을 부정하는 영화

포카라 2022. 1. 11.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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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 확률 이야기.

 

주식도 마찬가지지만 관상도 확률론적 측면이 있는데, 개명천지에 많은 사람들이 관상을 믿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 얼굴을 종합해 본 결과 범죄자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공통적 특징은 이렇다, 라고 할 때 우리는 이를 믿어야 하는가? 위에 너무 두터운 입술은 색욕이라고 했는데 그럼 아프리카 흑인들이 이런 입술이 많은데 다들 색욕이 강한가? 아닐 것이다. 요즘은 보톡스 맞아서 입술을 떡볶이처럼 하고 다니는 연예인도 있다. 이런 분들에게 색욕을 들이대면 안 된다. 평균적으로 색욕이 약간 강할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맞지 않을 것이다. 주식도 어떤 패턴을 그리면 그 다음 흐름을 확률론적으로 예상해볼 수는 있지만 항상 맞지는 않다. 상당한 확률로 맞는 경향이 있다. 입술이 두터워도 금욕주의자가 있을 것이다. 그럼 위에 관상은 틀린 거다.

 

 

  

운명의 노예

관상쟁이들은 얼굴에 당신의 운명이 다 나와 있다고 한다. 이런 관점을 받아들이면서 관상을 믿는다면 당신은 운명론자라는 말이 된다. 운명론자는 세상만사 모든 게 운명, 혹은 팔자소관이라서 내가 아무리 버둥거리며 노력해도 내 앞날을 바꿀 수 없다고 한다. 한마디로 나도 모르게 정해진 운명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이런 개 같은 경우를 왜 우리는 믿는 걸까? 운명론을 믿어서는 안 된다. 운명은 내가 스스로 개척해나가고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바뀐다.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다. 내가 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얼굴 형태의 노예가 되어야 하냐? 나는 내 의지에 따라 나를 바꿀 수 있다! 따라서 관상을 믿지 마라.

관상을 믿는다면 성형외과 의사들이 가장 부자로 살아야 할 것이다. 왜냐면 부자 관상을 모조리 얼굴에 넣어버리면 될 테니깐.

<관상>에서 송강호가 자기 자식이 젊을 나이에 비명횡사할 운명이라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관상의 허구를 말하는 부분이다.

 

 

 

 

수양은 정말 나쁜 새끼인가?

 

수양대군 관상이 피를 부르는 이리 상이라고 하는 부분은 수양과 대결하는 김종서 편에서 날조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조선왕조의 적통을 따지면서 수양대군 나쁜 새끼, 단종 불쌍한 왕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조카에게 사약을 먹이고 왕위에 오른 나쁜 수양!

 

그런데 조선왕조를 이성계로 부터 내려오는 장자 상속이라는 자기들이 만든 왕위계승 원칙을 논외로 한다면 수양과 단종은 정치 싸움을 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조선왕조 왕위 계승이 장자 상속이 아닐 때도 많았다. 따라서 단종이 정치를 잘 못하니깐 숙부가 나서서 내가 하겠다고 정권을 찬탈한 것인데 이걸 수양이 나쁜 짓 했다고 말한다면 이는 조선왕조에서 왕위 계승 절차에 대해 당신은 지지자가 되는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가 왜 조선 이성계가 정한 왕위 계승에서 적통 운운하는 것을 지지해야 하는데?

 

단종이 수양한테 비극적 최후를 당했기 때문에 사극의 단골로 캐스팅되고 있으며, 수양은 실제로 정치를 무지 무지 잘했고 조선의 기틀을 다진 왕이지만  어린 단종에게 사약을 처먹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쁜 왕이라는 인식이 일반인들 뇌리에 칡뿌리처럼 박혀 있다. 성산문 등 사육신은 추앙받고, 수양대군 편에 섰던 신숙주, 한명회 등에는 배신자 말대가리 이미지가 생겼다. 이것은 과연 역사에 대한 올바른 해석인가? 수양과 단종이 정치 쌈박질 하다가 단종이 세가 약해서 처형당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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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과 박정희가 다른 점

 

수양이 나쁜 새끼라는 이미지는 왕위찬탈 = 쿠데타,,,라는 시각 때문일 수도 있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켜 장면 정부를 아작내고 정권을 잡았던 것에 대해 민주주의를 짓밟았다는 지식인들 생각이 수양의 왕위찬탈과 오버랩 되는 것은 아닐까? 허나 수양의 조선과 대한민국은 엄연히 다르다. 조선의 왕은 인민이 투표로 뽑지 않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은 국민들이 뽑는다. 따라서 수양의 왕위찬탈과 박정희의 쿠데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짓밟은 나쁜 새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양 = 나쁜 자식, 이라는 이미지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조카를 죽인 숙부라는 이미지는 결코 용서할 수 없으니깐. 그래서 매번 연속극을 만들어도 수양이 정치를 잘한 부분은 전혀 나오지 않고 단종에게 사약 처먹이는 부분만 방송하면서 시청자들은 눈물샘을 값싸게 자극하는 것이다.

 

수양이든 단종이든 누가 정권을 장악하든 마찬가지다. 조선은 민주주의 정체가 아닌 왕조시대라서 신하들과 왕들이 해먹는 세상인데 민초들이 거기에 끼어들어서 주장을 할 상황이 아니다. 따라서 민초 입장에서 볼 때 수양이든 단종이든 누가 정권 잡고 해쳐먹든 내가 알게 뭐야 ~~~ 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초들은 단종을 불쌍히 여긴다. 왕조의 적통을 잇는 인물인데 어린 나이에 숙부한데 암살당했으니깐 조선 민초들은 비극의 주인공을 안쓰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자는 개자식이다. 조선왕조의 수양과 같은 맥락으로 봐서는 안 된다. 민의가 반영되는 정치에서 민의를 뒤집고 총으로 정권을 탈취했으니깐 조선왕조에서 정권탈취 싸움하고는 류가 다르다.

 

수양은 권력 투쟁에서 이긴 자일뿐이다. 수양은 관상을 믿지 않는다. 수양은 자신의 권력의지를 밀고 나가서 권력을 쟁취한다. 오히려 영화에서처럼 관상을 믿는 김종서를 역이용한다.

 

 

 

관상을 부정하는 관상쟁이

 

영화 말미에 수양의 측근 한명회가 송강호를 찾아 온다. 수양 주변에 관상이 나쁜 새끼 없느냐고 묻는다. 관상쟁이는 해안가에서 파도를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간과한게 하나 있소큰 흐름을 보지 못하고 미시적인 것에 너무 집착했소.저기 파도를 보시요저 파도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뭔지 아시요?바람이요, 나는 그 바람을 보지 못했소"

 

 

관상쟁이가 한 말은 인간은 개개인 얼굴에 매여 운명에 따라 사는 존재가 아니라 차라리 역사 속의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즉, 역사가 어떻게 개변하느냐에 따라 그 속에서 인간은 상처 입고 고통 받는 존재라는 것이다. 관상을 보는 운명론자 입에서 나온 말은 곧 관상의 부정이나 마찬가지였다.

 

수양의 편에 서느냐 단종의 편에 서느냐에 따라 인간의 존재는 완벽하게 달라진다. 독재자의 편에 서느냐,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이 되느냐! 내가 친일을 선택하느냐, 독립운동가의 길을 택하느냐 따라 운명은 바뀐다. 즉, 자신의 실존적 선택에 따라 운명이 바뀌는 것이지, 관상에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

 

영화 <관상>은 샤마니즘에 깊이 침윤된 심성을 가진 한국인들에게 어필될만한 소재를 다룬 영화였고, 이 때문에 흥행에 성공했다. 한국인들은 얼마나 점을 많이 보는가? 수상, 족상도 본다. 사주팔자도 본다. 이름도 함부로 짓지 않는다. 달나라에 우주선을 보내는 세상인데도 달을 보면서 소원성취 해달라며 기도한다. 영화감독이 영악한 거다. 한국인들 샤마니즘 취향을 살짝 건드려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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