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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와 당신' 그리고 라디오스타

포카라 2022. 1. 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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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스타

내가 안성기 출연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최인호 원작을 배창호 감독이 영화화 한 <겨울 나그네>에서 였다. 이미숙이 다혜 역으로 강석우가 민우 역으로 나왔었다. 민우와 다혜의 가슴 아픈 사랑이 마음을 시리게 했던 영화다. 그 영화에서 안성기는 민우와 다혜의 사랑을 이해하고 보듬는 역할을 했었다. 20년 전 이야기다. 그 뒤로 <남부군> <하얀 전쟁> 등 굵직한 영화에서 안성기는 항상 중심에 있었다. 내가 본 한국영화는 안성기를 빼 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는 셈이다. 안성기의 주름에는 한국 영화의 연륜이 녹아 있다. 나는 안성기가 좋다.

 

박중훈을 가끔 토크쇼에서 볼 때가 있는데 만일 그가 코미디를 했으면 얼마나 웃겼을까 생각할 때가 많다. 박중훈이 점잖은 영화에 나온다면 별로 흥행에 도움이 안될 것이다. 그의 이미지는 온전히 가벼운 웃음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안성기와 박중훈이 호흡을 맞춘 <투캅스> 같은 영화를 나는 별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실 이준익이 만들지 않았더라면 외면했을 영화가 <라디오 스타>다. <황산벌>과 <왕의 남자>를 보고 이준익에 홀딱 반했던 터라 주저 없이 이 영화를 본 것이다.

 

한물 간 왕년의 가수왕 <최곤>. 그는 자신의 전성기가 끝났음을 인정하지 않고 온갖 똥폼을 버리지 않는다. 그를 뒷바라지 하는 메니저 민수(안성기 분). 이 두 사람은 영월에 라디오 방송국까지 흘러 든다. 그리고 소소한 에피소드와 깨는 방송 멘트로 자신의 좌절된 삶에 분풀이하듯 방송을 하는데 외려 그게 청취자들의 심금을 울리게 된다. 이런 식이다. 다방 레지 김양을 생방송 스튜디오로 불러들여 ‘니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해봐’ 이런 식이다. 김양은 철물점 김씨가 커피 외상값 4만 5천원을 안내고 밍기적거린다고 방송에 대고 불어버린다. 시골 아줌마들이 화투를 치다가 막판 쓰리에 피를 받아야 하는가 마는가를 놓고 방송에 전화를 걸자 그건 규칙을 정하기 나름이라고 조언해준다. 서울간 아들이 삼년간 소식이 없어도 건강하기만 하면 좋다고 애타게 말하는 늙은 아버지의 음성도 방송을 탄다.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나는 거기까지가 이 영화가 제시할 수 있는 감동의 전부인 줄 알았다. <최곤의 두시의 희망곡> 이 빅히트를 해도 최곤은 영월 촌구석에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서울의 화려한 삶을 동경한다. 민수형은 최곤의 앞날을 걱정하고 그의 곁을 떠나고 실의에 빠지는 왕년의 가수왕. 성의 없는 방송을 하던 어느 날 순대국집 아들을 버리고 집을 나간 아버지를 찾는 방송이 나간다. 방송에 초대된 아이가 울고 최곤은 화가 나서 욕을 해대며 빨리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말한다.

 

나는 그 다음 장면에서 목이 메였다. 아이의 울음이 그치자 나도 사람을 찾는다고 최곤이 말을 시작한다. 민수형을 찾으면서 울먹이는 가수왕. 담배가 떨어지면 수퍼에 가지 않고 민수형을 찾았던 가수왕. 조용필처럼 만들어준다고 해놓고 가버리면 어떡하느냐고 눈물을 흘린다. 그 방송을 버스 속에서 들으면서 김밥을 우적우적 입속에 넣으면서 눈물을 애써 감추는 민수형.

 

그 때 배경음악으로 조용필의 <그대 발길에 머무는 곳에>가 잔잔히 깔린다. “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숨결이 느껴진 곳에. 내 마음 머물게 하여 주오. 그대 긴 밤을 지샌 별처럼 사랑의 그림자 되어 그 곁에 살리라 “ 밤하늘의 별이 빛나는 것은 주변의 빛나지 않는 뭇 별들이 있기 때문이라며 민수형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말한다.

 

조용필,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어쩌면 우리 인생은 한물 간 가수왕이든, 다방에서 커피배달을 하며 사는 영월 청솔다방의 김양이든, 손주녀석과 동강순대국집을 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할머니든 모두 삶이 툭 던져 놓는 애환을 켜켜히 간직하고 살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 속에 삶의 진실은 숨쉰다. 꽃처럼 피어나는 청춘의 날들도 어느덧 가버리지 않는가?

 

<비와 당신>의 가사처럼 사랑도 조용히 잊혀가고 다시 오지 않는다. 돌아보면 눈물만 나는 삶이고 아련하게 빛 바랜 추억만 그러안고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미워하지만 잊혀지지 않는 아픔을 간직한 당신. 이 영화는 그런 당신에게 보내는 엽서다.

 

박중훈, 비와 당신

 

진실은 감동을 뒤따라 오게 만든다. 영화는 가식과 위선을 다 벗겨내고 있는 그대로 우리 삶을 보여준다. 누추하면 누추한대로 우리네 삶의 풍경을 소박하게 옮겨 놓는다. 그게 감동을 불러올까, 하고 의아해 하지 마시라. 가수왕이 되고 음반이 많이 팔리고 돈을 버는 삶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당신 곁에 빛나지 않는 별이 되어 당신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지금 당신 곁에 민수형 같은 사랑의 존재가 있을 것이다. 아직 찾지 못했다고? 더 늦게 전에 왕년의 가수왕처럼 울고불고 해서라도 붙드시라. 그게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것이란다. 내가 느꼈던 잔잔한 감동의 여울이 당신에게도 함께 하기를

 

럼블피쉬, 비와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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