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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무지개 여신--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포카라 2022. 1. 1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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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해봤어,,,잘 지내니?

 

혹시 이런 전화 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토모야가 아오키에게 전화를 합니다. 불현듯 누군가 생각이 나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전화를 할 때, 당신은 그 사람을 '아직도'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이미 너무 늦었는지도 모르지만요.

이와이 슌지가 프로듀서를 하고 슌지 사단의 쿠마자와 나오토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 입니다. 슌지의 영화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난 뒤에 사랑을 알게되면서 후회하는 이야기 입니다. 너무 진부한가요? 그래요, 삶 자체가 그런 측면이 있어요. 우리는 항상 후회하고, 미련을 갖고, 가슴 아파하는 존재니까요.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삶의 도처에 얼마나 많은가요? 시간은 우리의 후회에 아랑곳 않고 그렇게 흘러가 버립니다.

지구 최후의 날이 오면

 

영화 속에 액자형식의 영화가 들어 있습니다. 아오이는 대학 영화동아리에서 활동합니다. 8미리 영화를 친구들과 찍는데 우연히 만난 토모야를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 그녀는 토모야가 좋아집니다. 그래도 내색을 하지 못합니다. 토모야의 연애 고민도 들어주고 다른 여자와 잘 해보라며 등을 떠밀기도 합니다. 물론 마음에 없는 행동이죠. 그러잖아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딴청 부리는 것. 바보탱이 토모야는 그런 아오이 마음을 모릅니다. 얼마나 미련곰탱이냐면 아오이에게 연애편지를 써달라고 조르기까지 하거든요.

 

 

 

영화는 두 겹의 이야기를 진행 시킵니다.

 

<지구 최후의 날>이라는 액자 영화를 통해 아오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아오이와 토모야의 사랑 이야기. 먼저 액자영화를 통해 아오이의 생각 속에 들어가 봐야 합니다. 앞으로 일주일 후에 지구가 운석과 부딛혀 멸망한다면 당신은 가장 먼저 무엇을 할까요? 스피노자적이고 니체적인 질문 입니다. 스피노자는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습니다.

 

<지구 최후의 날>에서도 그렇습니다. 미유키와 마코토는 연인입니다. 보도사진작가 마코토는 남극 운석 촬영을 위해 떠납니다. 마코토는 지구의 멸망에 아랑곳 않고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 합니다. 자신을 표현한다고 합니다. 텔레비젼을 틀어도 마찬가지 입니다. 만일 당신이라면 무슨 일을 할겁니까? 지구 최후라는 설정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인간은 죽기 마련이고, 한 개인의 죽음은 지구의 종말과 마찬가지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즉, 지구최후의 날, 이라는 설정은 만일 당신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당장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바꿔 읽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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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가 사과나무를 심는 이유

 

스피노자는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루터가 한 말이라고도 하니다만 스피노자 철학과 어울립니다. 지구의 멸망과 상관없이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하겠다는 겁니다. 내일 지구가 망한다면 사과나무를 심는 일이 부질없는 일일 수도 있겠네요. 사과를 따먹지도 못하니까요. 스피노자는 사과열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과나무를 심는 '일상적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한 겁니다. 맛 있는 음식을 원없이 먹고,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고,,,이런 것을 하고 싶으신가요?

 

왜 갑자기 죽음을 앞두고 가족을 찾고 해보지 못한 것을 하려고 하는 걸까요? 그것은 살아오면서 이런 일상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가족 혹은 사랑하는 이와 같이 지내는 일! 죽음을 앞두고 미유키는 이런 소소한 것들을 사랑하는 이와 하고 싶은 겁니다. 우리는 일상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죠. 스피노자는 지구의 멸망에 상관없이 가장 소중한 것인 일상적 삶을 살겠다고 말하는 겁니다. 이러한 사상은 니체에게 흘러듭니다. 니체 역시 지금 현재의 삶에 대한 예찬론자였습니다. 어느 정도였냐구요? 니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있는 것은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으며, 없어도 좋은 것은 없다"

지금 내 삶의 전부를 긍정하라는 말입니다. 니체는 삶이 고통스럽든, 환희에 차있든 상관없이 현재를 모두 긍정하라고 합니다. 지금 내 삶에서 어떤 부분을 버리고 싶은 부분이 있을 겁니다. 너무 고통스러우니까요. 주식으로 손실이 커서 힘들 때, 주식하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겁니다. 그 시간을 버리고 싶죠. 그럼 문제가 해결되는가요? 해결되지 않습니다. 내가 그 고통의 시간들을 껴안을 때, 그 때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생기는 겁니다. 어느 한 순간의 나의 삶조차도 사생아로 만들지 말라고 니체는 말합니다. 고통과 정면대결 해서 고통을 넘어서라는, 그래서 초인(위버맨쉬) 이 되라고 니체는 말합니다. 니체는 말합니다, 고통이여 오라! 니체에게도 지구의 멸망 혹은 생의 종말은 하등 문제가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냈기 때문입니다. 단 한 순간도 버릴 것이 없이 말입니다.

액자영화 <지구 최후의 날>에서 미유키는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도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과, 같이 했던 소중한 날들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을 것으로 봅니다. 한편으로 그 영화는 현실 속에서 아오이의 토모야에 대한 연서이기도 합니다. 아오이는 토모야의 사랑을 몰래 기다리는 존재로 나오잖아요. 액자 속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랑은 기다림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맨 왼쪽은 아오이 동생 카나역을 한 아오이 유우 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지만 사랑의 존재를 압니다.

사랑을 느끼는 순간

서로 동시에 불꽃이 튀는 사랑도 있지만 어긋나는 사랑도 많죠. 아오이는 토모야가 점점 좋아집니다. ​이 영화는 나까야마 미호가 주연한 <러브레터>와 많이 닮았습니다. 비련의 주인공이 남자냐 여자냐 차이일 뿐입니다. <러브레터>에서 후지이 이츠키가 프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대출증 카드 뒷면에 그려진 자신의 사진을 보면서 가슴 시려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첫사랑의 순간이 현전하는 시간입니다.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사랑의 향기는 남아있습니다. 그 장면만큼 사랑을 애틋하게 표현한 영화가 있을까요? <무지개 여신>에서는 토모야가 주인공입니다. 토모야는 아오이가 속내를 고백한 편지를 읽고 오열합니다.

아오이는 토모야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유부단한 점도 좋아
 
끈기 없는 점도 좋아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점도 좋아
 
둔감한 점도 좋아
 
웃는 얼굴이 가장 좋아

 

 

사랑을 하면 눈에 콩깍지를 쓰게 되나요? 최상의 사랑은 무엇무엇임에도 불구한 사랑입니다. 무엇무엇 때문에 하는 사랑이 아니죠. 단점도 장점도 다 포용하는 사랑. 아가페적 사랑이죠. 토모야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토모야는 이쁜 여자를 좋아합니다. 토모야가 잠시 동거하는 여자가 이혼경력과 나이를 속이자 헤어집니다. 사랑에 조건을 따집니다. 현실적 인간이라서 토모야를 비난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허나 진실된 사랑은 조건이 전제된 사랑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조건이 변함에 따라 사랑도 변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거래일 뿐입니다.

 

바보 같은 토모야는 자신을 사랑했던 아오이를 영원히 볼 수 없게 되고 나서야 회한의 눈물을 펑펑 쏟아 냅니다. 사랑은 그렇게 어긋나고 가슴 아프죠. 왜 사랑을 리얼타임으로 알아보지 못하고 뒤늦게 후회할까요? 아오이가 미국에 간다고 했을 때 토모야는 왜 잡지 못했을까요?

 

 

 

인생은 망설이기에는 너무 짧다.

 

영화 <멜깁슨의 사랑이야기>와 주제가 비슷합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불행하게 헤어진 남자가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그 남자가 바닷가에서 혼자 쓸쓸히 죽어가는 옛연인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뒤늦게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지금 당신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멜깁슨은 말합니다. 우리는 어느 순간 소중한 이에게 안녕을 고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생은 망설이기에는 너무 짧습니다.

 

 

 

"사람은 살아가고 있는 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면서 걸어갈 수 밖에 없다. 그런 만남, 그런 이별의 진정한 무게는, 리얼타임으로는 알 수 없다. 사람은 자신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 갖은 변명을 생각해 내고, 그것을 믿으려 애쓰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자신의 벌거벗은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상대가 자기 마음속에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죄여오는 듯한 고통과 함께 실감할 수 있게 된다.

이 이야기 속의 키시다 토모야도 또한 그런 사람 중 한명이다. 그와 사토 아오이의 관계는, 아마도, 누구든 한번쯤은 그런 관계가 있은 적이 있는 미묘한 경계선상에 있다. 친구인지, 연인인지. 스쳐 흘러가는 일상의 일부분인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온리 원인지.. 망설임과 두려움, 그리고 한없이 사랑스러움을 가슴에 품고 무지개라는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토모야와 아오이는 지금 이 순간도 내 속에 있다. 그리고 분명 당신 속에도 있을 것이다." (사쿠라이 아미 / 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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