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일기

느빌백작의 범죄 -- 아멜리 노통브

포카라 2022. 1. 11.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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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빌 백작은 퇴락한 귀족이다. 우연히 점쟁이한테 당신이 파티를 개최하는 날 사람을 죽일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처음엔 무슨 개소리 하는거야, 라고 흘려 넘기지만 불길한 예언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그리고 급기야 점쟁이 예언대로 자기가 반드시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면서 불면증에 시달린다.

그러던 차에 막내딸이 나타나서 이왕에 살인을 할 바엔 차라리 자기를 죽이라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게 가장 좋다면서 아빠를 설득한다. 그리고 마침내.......

​운명 혹은 결정론,,,이런 것을 믿으시는가? 믿지 않으신다고요? 그럼 이런 말을 종종 하곤 하는데.... '어차피 죽을 사람은 죽게 되어 있어, 접싯물에도 빠져 죽는다니깐...' 이런 말을 하거나 동의한다면 당신은 운명론자이다. 즉, 내 인생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초월자나 내가 모르는 어떤 운명이 나를 조종해!

 

종교와 운명론자

 

그러니깐 인생을 내가 모르는 어떤 실타래가 조종한다는 세계관이 있고, 나의 삶은 내가 주체적으로 살아가면 그만이라는 세계관이 있다고 양분해 볼 수 있겠다. 종교적 세계관에 빠진 자들은 운명론자이다. 하나님이 나의 삶을 주재하니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 가는 인생이니 뭇 중생을 자비로운 눈으로 바라보라. 전생이 어쩌고 저쩌고.

 

당신이 미아리 점집에 갔는데 점쟁이가 하는 말,,,, 니가 어느 날 사람을 죽일 것야, 라고 점궤를 내놓으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점쟁이를 하나님으로 대치해보면 어떨까? <욥기> 를 보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희생의 제물로 바치라고 한다. 이 소설<느빌백작>과 비슷한 구도 아닌가?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이려는 순간 천사가 내려온다. 느빌 백작 역시 딸을 죽이기로 한다.

​그럼 왜 느빌은 누군가를 살해하려고 하고, 딸은 왜 죽음을 자처하는가? 느빌은 운명론자다. 점쟁이가 한 말을 결국 믿고 자신의 운명이 누군가를 죽여야만 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단지 그 누군가가 딸이었을 뿐이다. 운명의 꼭두각시. 살기 힘들거나 아프거나 마음이 약해질 때 우리는 운명론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주체적인 나로부터 도피해서 운명으로 달아나버리는 나약한 인간. 그래서 니체는 고귀한 인간은 정신이 강한 인간이라고 했다. 위버맨쉬는 초강력 정신의 보유자이다. 니체는 운명을 거부한다. 스스로운명을 창조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죽을 용기가 없는 삶

 

느빌백작의 부인은 될데로 되라지 스타일 이다. 우아함과 위선적인 삶을 방해받지만 않으면 아무렴 어때! 백작부부의 아들과 첫딸은 귀족사회 이상에 완벽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사회관습에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행동한다. 막내딸은 다르다. 사는게 시시껍적 이다. 차라리 죽는게 낫다. 느낌이 없이 사는 것보다 죽는게 차라리 나아! 매 순간이 환희로 가득찬 삶이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정반대 삶이 아닐까? 삶에 질질질 끌려가는 시간들로 채워진 인생. 그래도 죽지 못한다. 죽을 용기가 없으니깐.

막내딸은 그렇게 살바엔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보며, 마침 아빠가 살인대상을 찾는데 동참한다. 굳이 남을 죽일 바에 나를 죽여줘!

 

​결말을 알고 싶으신가요? 책을 읽어보면 결말이 나옵니다. 다 이야기하면 재미없잖아요. ^^

 

세레나데

 

막내딸이 마지막에 슈베르트의 <백조의 노래> 모음곡을 듣는 장면이 나온다. 슈베르트가 느낌이 없이 사는 막내딸을 음악으로 구원해낸다. 도대체 음악의 어느 부분이 그렇게 삶을 애틋하게 만든 걸까? <백조의 노래>에 묶여 있는 14곡 중에 내가 고등학교 때 배웠던 <세레나데>를 듣는다. 아, 너무도 감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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