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일기

앙테크리스타 -- 악이 당신을 구원한다

포카라 2022. 1. 1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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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에 대하여

 

선은 권장하고 악은 쳐부숴야 한다. 악이 없는 세상, 서양인들이 꿈꾸는 세상이다. 이분법적인 사고방식. 서양철학에서 선과 악은 동일성과 타자로 얼굴을 바꾼다. 타자를 동일성으로 흡수하려는 시도. 나는 옳고 타자는 틀렸다. 따라서 타자는 ‘옳은’ ‘선’인 나에게 흡수되어야 한다. 타자를 인정하지 않고 끝없이 파괴해온 역사. 자신의 종교만이 옳고 나머지는 모두 적그리스도다. 파괴하고 동일성 안으로 흡수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

 

동양은 어떤가 악은 오다. 혐오(嫌惡)스럽다에 사용될 때 악은 오, 라고 읽는다. 추하다는 의미가 정확하게 동양에서 악이다. 따라서 동양에서는 비록 혐오스럽고 추할지라도 처단의 대상은 아니다. 서양에서 선과 악이 있지만 동양에서는 아름다움과 추함이 있을 뿐이다. 선은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아름다움과 추함은 언제든지 자리바꿈 할 수 있는 위상을 가질 뿐이다. 아름다운 여자는 언제든지 추해질 수 있다. 상대적인 개념이다. 똥은 어떤가? 혐오스럽고 추하다? 그러나 변비 걸린 사람에게 푸짐한 똥은 추함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다. 똥이 추하다고 똥을 싸지 않는 상황을 생각해보라. 먹는 것은 아름답고 싸는 것은 추한가? 똥구녕을 열흘만 코르크 마개로 막아버린다면? 뒈진다. 추함은 없애 버려야 할 것이 아니다. 추함은 추함대로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선과 악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추함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추함은 언제든지 아름다움으로 자리바꿈을 하기도 한다.

 

아멜리 노통브 소설은 항상 적과 대결을 상정한다. <적의 화장법> <살인자의 건강법> <오후 네시>를 보라. 적이 나타나고 주인공은 적과 대결한다. 노통브는 서양의 사고방식의 틀 안에서 소설을 쓴다. 그런데 노통브의 적은 처단해야 할 적과는 살짝 다르다. 그는 말한다.

"적을 갖지 못한 인간은 보잘 것 없는 존재다. 적이 없는 삶은 허무와 권태의 구렁텅이, 가혹한 시련이 아니겠는가? 적이야말로 구세주다."

 

 

당신이 생각하는 천국은 어떤 모습인가? 적당히 따뜻한 날씨라서 나뭇잎 한장만 사타구니에 걸치면 되니깐 옷이 필요 없다. 배 고프면 과일 따먹으면 된다. 자식들 키우려고 하루 열시간 이상씩 개고생할 필요도 없다. 돈도 필요 없으니 주식시장이나 비트코인 거래를 하면서, 아등바등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없다. 나를 괴롭히는 악이 없으니 걱정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세상. 이런 세상이 당신은 좋은가? 천국에서 두달만 살아보면 머리에 쥐가 나지 않을까? 따분하고 권태롭고 지겨워서 결국 우울증에 빠지거나 지옥으로 가겠다고 떼를 쓰지 않을까? 제발 나를 익사이팅한 지옥으로 보내줘!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천국과 지옥이란 개소리는 집어 치워라. 영원회귀가 있을 뿐이다. 기쁨과 고통, 아름다움과 추함이 영원에 내 앞에 반복되어 되돌아 오는 시간이 있고, 우리는 영원회귀의 생 앞에서 오로지 도전하는 삶이 있을 뿐이다. 종말이 아니라 과정이 있을 뿐이다. 고통조차도 기쁘게 받아들이고 넘어서려는 존재, 우버멘쉬! 고통이어 오라! 얼마든지 이겨내겠다. 시지프스와 프로메테우스적 삶.

 

니체는 어떤 경우에도 생을 긍정하라고 한다. 나에게 주어진 삶의 환경은 참으로 엿같지만 그렇다고 부정하고 자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차피 받아들이고 넘어서야할 뿐이다. 우리의 삶은 끝없이 고통과 기쁨이 반복해서 영원히 되돌아오는 시간만이 있을 뿐이다. 노통브에게 '적'은 성가시고, 죽이고 싶은 존재다. 지옥같은 존재. 그러나 적이 없으면 나는 보잘 것 없다. 나를 성숙시켜주지 못하니깐?

적그리스도가 당신을 구원한다!

 

소설 <앙테크리스타>에서 블랑슈와 크리스타는 대학에 같은 과에 다닌다. 크리스타는 이쁘고 인기 많고 말 잘하는 아이다. 블랑슈는 친구가 한명도 없고 가슴이 작고 내성적이고 책만 좋아한다. 크리스타가 블랑슈에게 접근해서 평온했던 블랑슈의 삶을 뒤흔든다. 급기야 크리스타는 블랑슈에게 적그리스도인 앙테크리스타가 된다. 그리고 블랑슈는 마침내 앙테크리스타와 만남을 계기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게 된다. 그러니깐 적그리스도는 블랑슈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인 셈이다. 적과 대결을 통해 찾은 자아?

블랑슈가 적그리스도와 대결하는 국면은 흥미롭다. 사랑만이 모든 것을 이긴다! 크리스타가 학생들에게 블랑슈의 험담을 늘어 놓자 블랑슈는 사랑으로 응답한다. 모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블랑슈는 크리스타와 키스를 한다. 사랑은 적그리스도를 항복시킨다. 물론 블랑슈의 키스는 그리스도의 사랑 개념은 아니지만,,,, 여튼 전략으로서 사랑행위는 크리스타를 무너뜨린다.

마지막으로 가슴이 문제다. 여자의 가슴은 여자에게나 남자에게나 치명적이다. 크리스타는 블랑슈 가슴이 작다고 타박하면서 가슴 키우기 마사지 체조를 알려준다. 블랑슈는 거부한다. 이 때까지 블랑슈는 적그리스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자신의 존재세계를 꿋꿋이 지키는 존재다. 그런데 마지막 한줄에서 블랑슈는 적그리스도에게 동의한다.

"이렇게, 그녀의 뜻은 이루어졌다. 내 뜻이 아니라"

이 소설이 말하는 바는 무엇일까? 선과 악의 투쟁? 선이 악을 제압하지만 결국은 악의 승리? 크리스타가 블랑슈에게 고통을 안겨주지만 결국은 블랑슈는 크리스타가 되어가는 존재인가? 전두환과 싸우던 전대협이 결국 전두환을 닮은 행동을 하듯? 소설을 읽고 각자가 결론 낼 일이다. 다만 노통브에게 '적'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 적은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하면서 나를 자극하고 나를 권태 속에 빠지지 않게 하고, 급기야 나를 구원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만일 당신의 삶이 권태롭고 따분하고 지겹고 우울하다면 당신에게 치명적인 적이 없다는 증거? 노통브는 '망각이야말로 진정한 죽음' 이라고 한다. 적그리스도는 당신을 망각으로 부터 구원해주는 존재라고 노통브는 주장한다. 당신이 믿든 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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