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내 비가 왔나 보다. 아침의 얼굴은 맑다. 집 앞에 키 큰 메타세콰이어가 노란 잎사귀들을 흩뿌려놔서 을씨년스러운 풍경이지만 나무들은 자신들의 몸의 일부를 버려야 할 때를 아는지 아무련 미련도 없는 듯하다. 여느 해 겨울 이맘때였을까? 혼자서 부석사를 찾은 적이 있다. 조사당 뒷편으로 가는 길에 산죽들이 바람결에 오소소하게 떨고 있었다. 작은 절집 앞마당에 아름드리 나무가 잎새 하나 없이 서 있었다. 그 나무는 멀리 보이는 소백산맥을 대면하고 시간의 흐름을 무념의 경지에서 침묵하는 듯했다. 아, 나무가지들이 그려놓은 기하학적 추상 같은 그림들. 아름다웠다. 어떤 그림보다도. 그 나뭇가지 위로 펄펄 눈이 나릴 것이다. 찬바람이 불고 새들도 오지 않는 고독의 밤이 찾아와서 몸서리날지라도 나무는 묵묵히 거기..